'공허'로 수렴되는 연애소설 /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 이야기

상실의 시대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문학사상사


2000년 초반 휴대폰(2G폴더)으로 '노르웨이의 숲'을 검색하는 CF가 있었다. 이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첫 만남이었다. 20대 초중반, 내 삶은, 방향은 커녕 하루하루 살아가던 시간조차 의미 없던 시절이었다. 개인적으로 혼란의 시기에 만난 상실의 시대였기 때문에, 내 마음 속 공허함을 더 깊이 울려주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의 행동이 더 깊이 내 마음에 다가 왔다.

소설의 배경은 1970~80년대 일본이다. 2차 세계 대전 후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한 일본이었으나, 경제 불안, 버블의 붕괴로 인해, 그 시절 젊은이는 무기력에 둘러 싸였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어린 시절 친구의 여자 친구 나쓰애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그녀는 정신적 문제로 인해 요양을 하게 된다.

주인공의 모습은 일본 젊은이들을 대표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그의 모습은 무척 인상 깊다. 마치, 어딜 향해 가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우리의 20대 모습도 겹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살아간다. 남겨진 사람들은 결국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이 소설은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슬픔과 공허속의 늪에서 점차 사람이 있는 울타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많은 소설 중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그의 책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나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가득하다, 이 세상에서 너 말고 내가 원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너와 만나 이야기 하고 싶다, 모든 걸 너와 둘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라고 말했다.
미도리는 한참 동안 전화 저쪽에서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마치 온세계의 가랑비가 온 세계의 잔디 밭에 내리고 있는 듯한 침묵이 계속 되었다. 나는 그 침묵이 계속 되는 동안 줄곧 유리창에 이마를 바짝 붙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다. “자기, 지금 어디 있는 거야?”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어.디.에. 있는 것 인가?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로인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 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 p.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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